
▲김태훈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고곤의 선물 무대에서 젊은 담슨을 연기하고 있다.(사진/홍보실DB)
전작 ‘에쿠우스’에서 그가 맡았던 다이사트는 열정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고곤의 선물’의 담슨은 그 열정 안에서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비교하자면 다이사트는 살리에르고 담슨은 모짜르트다. 교수 개인은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나는 천재는 아닐 거예요. 그러니 부단히 노력하면서 광기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거겠죠. 하지만 본질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기질은 조금 갖고 있지 않을까요?(웃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태훈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고곤의 선물의 주인공 담슨 역을 맡아 열연했다. 에쿠우스 이후 4개월 만이다. 고곤의 선물은 독특하게 회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승승장구 하던 천재 극작가 담슨은 테러리즘과 복수에 대한 그의 신념이 드러난 작품이 실패하자, 두 번째 아내인 헬렌과 그리스에서 은둔생활을 한다. 곧 담슨은 변사체로 발견되고 얼마 후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전기를 쓰겠다며 헬렌에게 찾아온다. 헬렌은 담슨을 처음 만난 20대부터 파멸에 이른 40대까지를 회상하며 그의 충격적인 신념과 작품을 파헤친다.
우리나라에서 2003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에쿠우스의 작가 피터 쉐퍼의 말년 작으로 창작에만 3년이 걸렸을 만큼 완성도 높은 연극이다. 복수라는 신념과 용서라는 신념이 각각 담슨과 헬렌에게 대응돼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뇌를 풀어낸다. 또한 메두사 신화와 현실이 뒤섞여 담슨과 헬렌의 관계를 해부하는 것도 신선한 느낌이다. 지난 2012년 공연 시 매회 기립박수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던 극단 실험극장이 다시 한 번 제작을 맡았다.
웅장함이 느껴지는 무대구성이나 음악, 섬뜩하게 펼쳐지는 안무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배우들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김 교수는 “다른 것 보다 담슨이 어떤 인간적 고민을 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부분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연극이 복수와 용서라는 신념을 다루고 있지만 어느 인간도 한쪽에만 치우칠 수 없다. 그 간극에서 오는 치열한 고뇌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고곤의 선물은 여러 가지로 김 교수에게 도전이었다. “연극 시작 한 달 전에 급하게 합류하게 되면서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여태까지 소리 전달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엄청난 대사의 양에 널뛰는 감정 선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객들의 평가는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80%밖에 완성을 못시킨 것 같다”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담슨의 대사에 자신의 삶과 본질을 온전히 얹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업 연극배우도 1년에 3작품 이상을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김 교수는 에쿠우스, 고곤의 선물에 이어 오는 11월 7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을 준비 하고 있다. 다작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40대 초반에 큰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 내년에 내가 50살이 된다. 긴 시간동안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내 40대를 돌아봤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연극은 나에게 '행복하기 위한 살풀이'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기가 인간의 삶과 깊숙이 밀착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취재 및 글|김지아 홍보기자(zia_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