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취득
이재교 세종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오래 전에 지은 건물을 측량해보니 이웃 건물이 경계를 침범한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10년대 이루어진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지적도가 정밀하지 않은 원인도 있고, 건물을 신축하면서 경계 측량을 정확하게 하지 아니한 원인도 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약 30년 전에 지은 건물이 옆의 토지를 10㎡ 침범하였다면, 취득시효로 인하여 그 10㎡ 토지가 건물주의 소유로 되는 것일까?

타인 소유의 물건이라도 자신의 물건인 줄 알고 오랫동안 사용하면, 즉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점유하면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제도가 시효취득 제도다(민법 제245·246조). 여기서 ‘평온’은 폭력적이지 않다는 뜻이고, ‘공연’은 몰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민법은 점유자가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시효취득을 부정하는 사람, 즉 진정한 소유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취득시효 기간은 동산은 10년(선의 무과실이면 5년), 부동산은 무효인 등기를 한 경우 10년, 등기를 하지 아니한 경우 20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점유한 사람은 원래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토지사기범으로부터 토지를 매수하고, 이를 모른 채 장기간 그 토지에 농사를 지은 경우, 토지사기범으로부터 위조서류에 의하여 이전등기를 받았다면(이 등기는 물론 무효다), 10년이 지나면 소유권자가 된다. 이전등기를 받지 아니하였다면, 20년이 지나야 권리자로 인정될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진정한 소유자에게 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건물이 경계를 침범한 경우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보이므로, 시효취득이 성립할 것 같다. 폭력을 쓰지 않았으며, 건물의 위치는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공연하다고 하겠고, 소유의 의사는 추정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시효취득은 인정되지 않는다. ‘소유의 의사’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판례(1997. 8. 21. 선고 95다28625 전원합의체 판결) 에 의하면, 소유의 의사는 점유자의 일방적·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의사다. 예컨대 소유자 아닌 사람으로 부터 토지를 매수하였다면, 비록 권리자로부터 매수한 것이 아니므로그 매수 자체는 무효지만, 소유의 의사는 인정된다. 소유하고자 매수하 였을 테니까. 그러나 경계침범과 같이 무단침범한 경우에는 침범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소유의 의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추정이 깨지는 것이다.
타인의 토지를 경계침범하는 것은 타인의 소유권을 침범하여 위법한 행위인데, 그런 행위에 대하여 20년이 지났다고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수긍하기 어렵다. 판례는 이러한 상식을 확인한 셈이다. 법은 고도(高度)의 상식이라고 한다. 법이 위법한 침범자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면서 정당한 권리자를 희생시킬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