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박물관 유물 이야기
구석기시대의 하이테크, 주먹도끼
황보 경
박물관 학예사




▲뗀석기 <사진 1> <사진 2> <사진 3> <사진 4>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류가 출현한 것은 대략 2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1) 아프리카를 떠나서 유라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으로 퍼져 살게 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일반적으로 전기와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데, 이러한 편년은 석기의 기술적인 발전 양상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먼저 전기 구석기시대는 약 260만~25만 년 전 사이로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올두바이(Olduvai) 유적 최하층에서 찍개와 몸돌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고, 유럽에서는 아슐리안(Acheulean) 석기라고 불리는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가 만들어졌다. 중기 구석기시대는 약 25만~4만 년 전에 해당되고, 석기의 제작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는데, 이때 르발루아 기법이2)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후기 구석기시대는 약 4만~1만 2천 년 전까지의 시기로 돌날 또는 좀돌날이 유행하고, 다양한 형태의 밀개와 새기개, 뚜르개 등이 만들어지며, 뼈와 뿔, 상아와 같은 재료로 도구와 치레거리도 제작되었다.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북한 지역의 함경남도 웅기 굴포리 서포항 패총과 남한 지역의 공주 석장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그 후, 연천 전곡리 유적을 비롯하여 파주 금파리·가월리, 광주 삼리, 단양 금굴·수양개 유적 등 전국 여러 곳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다양한 석기와 함께 호모 사피엔스 인골, 곰·사슴 등 동물 뼈 등이 출토됐다.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로는 단연 주먹도끼(Handaxe, <사진 1> 3))라고 할 수 있는데, 1940년대 미국의 고고학자 모비우스(Movius)는 프랑스의 생 아슐지방(Saint-Acheul)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도끼’를 기준으로 세계를 두 문화권으로 나누었다. 인도를 경계로 서양은 주먹도끼 문화권, 동양은 찍개 문화권으로 구분했는데, 이 주먹도끼는 돌의 박리 과정과 순서를 예측하면서 타격을 해야 해서 찍개보다 제작하기가 어려워 구석기시대의 하이테크(Hightech)라 할 수 있다. 그는 주먹도끼를 기준으로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1978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Greg Bowen, 1950~2009)이 연천 전곡리의 한탄강변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하게 되면서 세계 고고학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 연천 삼거리 유적에서 르발루아 기법으로 제작된 몸돌이 출토됨에 따라 아시아 구석기시대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 박물관에는 주먹도끼 제작 기법과 형태가 유사한 주먹찌르개(Pick, <사진 2>), 양면석기(Biface, <사진 3>)가 소장되어 있고, 새의 부리를 닮은 부릿날(Side Scarper, <사진 4>)과 여러면석기, 몸돌 등도 있다. 특히 주먹찌르개는 끝이 길면서 뾰족하고, 좌·우 옆면에 잔손질이 정교하게 베풀어졌으며, 사냥이나 유기물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됐다. 양면석기는 좌·우 양면에 날이 세워져 있어 예리하며, 끝으로 갈수록 너비가 줄어들고, 뒷면으로 올수록 넓어져 창끝에 묶어서 사냥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릿날은 뚜르개처럼 뾰족하게 손질되어 가죽이나 나무, 뼈 등에 구멍을 뚫는 데 사용됐다.
우스갯소리 중에 “백날 땅 파 봐라, 돈이 나오나”라는 말이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땅을 파서 유물도 찾고 돈도 번다. 그리고 그렉 보웬은 주먹도끼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석기를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산책이나 여행을 다니다가 특이한 돌을 발견한다면 누구든지 그렉 보웬처럼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참고자료 ]
● 신은주, 2022,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 초록비책공방.
● 한국고고학회, 2007, 『한국 고고학강의』, 사회평론.
● 인터넷 : 한국고고학사전(portal.nrich.go.kr), 검색어-구석기시대, 양면석기, 주먹찌르개, 르발루아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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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의 먼 조상은 약 700만 년 전부터 450만 년 전 무렵 사이에 초보적 단계의 두발 걷기를 하며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르발루아 기법(Levallois technique)은 제작자가 만들고자 하는 격지의 형태를 미리 계획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몸돌을 준비하여 떼기를 하는 방법이다.
3) 연천 전곡리 출토품(국립중앙박물관 제공).